고층 아파트에 군사시설?…재건축 현장서 번지는 '대공진지' 갈등
설치 기준·정보 비공개…조합도 입주민도 "알 수 없는 불안"
서울 고층 재건축 장려 속 군사시설 충돌…제도적 정비 시급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고층 아파트에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군의 대공방어 작전상 필요에 따라 군사시설 설치가 요구되지만, 이를 둘러싼 명확한 기준이 없어 정비사업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일부 단지에서는 군사시설 설치 여부를 두고 조합과 입주민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며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는 고층 재건축을 추진하는 일부 서울 일대 재건축 조합을 대상으로 대공방어 시설 설치를 요구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르면 '대공방어 협조 구역' 내 위탁고도(77~257m)에 해당하는 건축물은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건축심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고도를 낮추거나, 군이 요구하는 대공진지 등의 군사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조합들은 갑작스러운 군의 요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옥상에 설치되는 대공진지는 입주민들 사이에서 기피 시설로 여겨지며, 사업성 저하 및 이미지 타격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설치 기준 또한 명확하지 않아 사업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군은 대공방어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대공 방어 시설을 구축한다. 이에 위탁고도 내에 해당하는 건물 중에서도 일부에만 군사시설이 설치된다.
군은 보안 상 서울 상공의 방공 정보나 대공진지 설치 기준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건축 사업장들은 아파트에 군사시설이 설치될지 여부조차 알지 못한 채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군이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지 않아 우리 역시 알 수 없다"며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북서울자이폴라리스' 아파트에선 대공진지 설치를 두고 입주민과 조합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입주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옥상에 군사시설이 설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입주민들은 철회를 요구하며 강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조합과 구청은 2021년 수방사와의 협의를 거쳤고, 당시 합의에 따라 대공 진지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던 것은 보안상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도 피력했다.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재건축 등으로 대공방어 작전에 제한이 생기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치를 조건으로 건축을 허가하고 있다"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결정인 만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35층 룰'을 폐지하는 등 고층 재건축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군의 대공 방어권과 재건축 사업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이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조합 관계자는 "서울시는 고층 재건축 길을 열어줬는데, 군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조합 입장에서는 군이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조용히 넘어가 주기만을 바라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gerra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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